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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통일 과정이 주는 교훈

기사승인 2020.11.16  13: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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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616(2020)개성 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20184월 남북 간 판문점선언에 따른 합의로 같은 해 9월에 개소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북한의 이 무도한 도발은 지난 김대중 정권 이래 수십 년 간 지속돼온 북한과의 화해 제스처에 종말을 고하는 일대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 다음날 독일의 대표적인 보수언론인 Die Welt의 토르스텐 크라우엘 (Torsten Krauel) 주필은 김정은과의 평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제하의 논평 기사를 게재했다.

북한의 폭파행위가 자행된 지 하루 만에 나온 이 독일 언론의 논평은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이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필자의 평소 생각을 확인해 주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직후 동독 공산당 정권의 마지막 총리를 맡아 서독 헬무트 콜 총리와 통일방안을 논의했던 한스 모드로 전 총리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는 지난해 10KBS 독일특파원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통일이 되려면 서로간의 신뢰가 생겨야 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에서는 화해가 있어야 하고 대립상태가 몇 세대를 거쳐 계속 유지돼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던 통일의 기반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드로 전 총리는 남북 간의 이해를 넓히고 동계 올림픽, 독일에서 열리는 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 단일팀과 같은 작은 걸음을 이어가고 발전시켜야합니다라며 한반도의 화합과 통일에 대한 조언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어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진 주변국, 즉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모드로 전 총리는 한국과 북한 모두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라며, 독일 정부가 남북한 통일 문제에도 외교적 기여를 더하도록 국회를 통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3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의 산증인인 모드로 전 총리는 1928년생으로 90세가 넘은 독일 좌파당 원로회의 의장을 맡고, 강연과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왕성한 정치,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89119일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몰랐다고 실토했다.

1989119일 동독 통일사회당 중앙위원회는 온종일 회의에 몰두하고 있었다. 전날부터 사흘일정으로 새 정부 구성을 위한 회의가 진행됐다.

첫날 회의에서 후임 총리후보로 임명된 한스 모드로도 역시 당일 저녁 9시까지 지속된 회의에 참석했다. 9시 반 쯤 회의장에서 나와 숙소로 가던 모드로 전 총리에게 한 청년이 다가왔다.

국경이 열렸습니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왜 그런 생각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국경이 개방됐다고...”

그래서 어디로 가죠?”

저도 건너가고 싶습니다.”

그는 숙소에 도착하고서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가 기자회견에서 지금 당장(So fort)’ 서독 방문이 가능하다는 발언이 있은 후 동독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샤보브스키의 발언은 분명 실수였다. 모드로 전 총리는 다음날인 1110일 오전 5시 발표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사실 전날까지 휴가를 갔다가 기자회견 당일 복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표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언제부터 조치가 시행되느냐?”는 기자들의 계속되는 질문에, 얼떨결에 지금 당장라고 답한 것이다.

세계적인 사건이 우연으로 시작된 경우였다. 독일 통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빌리 브란트도 198910월 서울을 방문했을 때 독일 통일은 금세기 안에는 불가능하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그로부터 불과 2주 뒤인 11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통일 시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독일인들은 통일은 도둑고양이처럼 다가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서야 깨닫고, 이에 대한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이 언제 벌어질지는 신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이해된다.

중국의 리펑이나 러시아의 푸틴 같은 외국지도자들도 한반도에 통일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고 밝힌바 있듯 국내외 전문가들을 통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넘쳐나는데 실제 통일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 담론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1990년 통일과 함께 개정된 독일 헌법전문을 보면 독일인들은 자유로운 자결권으로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완수했다고 돼있다. 즉 통일만을 완수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완수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통독 전 서독의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체제를 동독 주민들과 함께 자유로운 자결권으로 통일 독일에 도입됐음을 의미한다. 통일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체제로 통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실천적 통일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와 학계, 그리고 언론이 명심해야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독일통일의 원동력이 됐던 동독주민들에 대한 인권 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다.

1975년 헬싱키선언과 함께 일어난 서독 인권운동은 동독에까지 인권의 바람을 불게 했고 이것이 1989년 교회를 중심으로 한 동독인들의 동독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을 이끌어냈고 평화 혁명으로 승화시켜나갔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에서도 북한 주민들에게 초점을 맞춘 통일 정책이 구사돼야한다. 우선 탈북민들을 제대로 대우해야한다.

그때 막 북한에서 탈북러시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당시 탈북자 정책은 미온적이기만 했다.

김대중 정부 때 기회가 있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 주민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人權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문제는 북한이 동독과 달리 과거 75년간 군사국가라는 점이다. 핵보유는 북한의 국가적 의미와 존재 그 자체다. 그런 나라나 그 지도자로부터 긴장완화를 기대한다는 건 소용없는 일이다,

통일이 되려면 상호 신뢰가 있어야하는 한편 문제가 있는 부분에서 화해가 있어야하고 대립상태가 몇 세대를 거쳐 계속 유지되면 안 된다는 점을 앞서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한스 모드로의 증언을 통해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북한은 지난 75년간 군사국가다.

태생부터 무장국가이며 모든 유전자를 보더라도 군사 국가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지난 53727일부로 양측이 총을 내려놓고 전쟁을 쉬는 정전상태이다. 전쟁을 하다말고 쉬고 있는데 한쪽 일방이 상대방의 인명을 살상하거나 현조물을 파괴하면 그건 도발이 아니라 공격이다.

북한의 도발이나 공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때문에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68년의 청와대 기습사건, *울진 삼척무장공비사건, *76년 판문점 도끼만행, *83년 아웅산 테러사건, *87년 대한항공 폭파 사건,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등등, 이처럼 도발이 됐건, 공격이 됐건 수많은 사건들을 저지른 북한이나 그 지도자로부터 긴장완화니, 평화니, 하는 레토릭이라도 기대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 아닐까?

통일은 남북한 간 가치와 체제의 수렴을 통해 실현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 주민의 희망이자 대안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통일 30주년을 맞은 독일을 바라보며 분단 75년을 이어온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한다.

통일은 행동이고 열정이다. 여건을 만들고 때가 되면 무섭게 결단해야한다. 통일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한다.

우리 지도자들의 의식이 더 이상 분단의 밤을 헤매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17,18대 국회의원/ 통일이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류 근찬

 

 

 

강대일 hykk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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